나사로를 고치신 표적 posted on Aug. 8, 2022 in 설교요약


요한복음의 별병은 ‘일곱가지 표적의 책’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표적’이란 ‘어떤 의미를 알려주는 표시’를 말합니다. 영어로 싸인 (sign) 이라고 말하고, 헬라어로 '세메이온'(σημεῖον)입니다.

그런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싸인”(sign) 그러면 보통 두가지 다른 의미를 생각합니다. 하나는 연예인들이 팬들에게 싸인을 해주거나 책을 출판한 저자가 독자에게 싸인을 해주는 걸 말할때 쓰는 사인입니다. 며칠전에 1년에 한번 있는 우리 교단의 총회에 참석했는데, 그때 개인적으로 아는 목사님들 몇분을 만나서 제가 쓴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두번째로, 우리가 싸인(sign)이라는 말을 사용할때는 어떤 신호를 말하거나, 길거리에 있는 ‘간판’을 싸인(sign)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간판이 무언가를 알려주는 신호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간판 자체가 목적이나 목표물이 아니라, ‘여기에 한인 식당이 있습니다’ 혹은 ‘여기에 미용실이 있습니다’ 하고 알려주거나 안내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이 바로 이런 싸인(sign)입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주고, 믿도록 안내해 주는 하나의 싸인(sign)이라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싸인(sign)은 영어가 우리말이 된 외래어이고, 원래 우리말이 ‘표적’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행하신 첫번째 기적인 ‘물을 포로주로 변화시킨 사건’에 대해서, 요한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요2:11). 요한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표적’ 즉 싸인(sign)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가르키는 하나의 사인이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요한복음이 거의 끝나는 20장 30-31절에 가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을 요한은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20:30-31). 한마디로 말하면, ‘예수믿으면 병고친다,’ ‘예수님 믿으면 잘되고 성공하고 축복받는다’ 그걸 가르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죄인의 구세주이시고,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는 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행하신 일곱가지 기적들을 예수님이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기 위한 표적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한복음 11장에 등장하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일곱번째 표적은 나사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미리 증거하고 보여주는 하나의 표적입니다. 본문의 배경을 보면, 베다니 마을에 나사로가 두 여동생 마르다와 마리아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11:1-2). 여기에 나오는 나사로는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주인공 ‘나사로’가 아닙니다. 그 나사로는 평생을 부자집 대문 밖에서 음식을 얻어 먹는 거지로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다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입니다(눅16:19-31).

하지만, 여기에 나오는 나사로는 베다니 마을에 살고 있었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오빠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예수님과 깊은 친분관계를 맺고 있었던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예수님에게 사람을 보내서 집에 와서 나사로를 고쳐달라고 요청을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절). 그리고, 예수님은 이틀간을 더 머문 후에 (6절), 베다니 마을로 발길을 향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베다니에 도착했을때는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지 이미 나흘 (4일)째’가 되었습니다 (17절). 예수님은 마을 입구에서 예수님을 슬퍼하고 있는 마르다와 마리아를 만나게 됩니다. 나사로의 여동생 마르다가 먼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1절). 그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25절). 그러자 마르다가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도 언젠가는 죽지만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안에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우는 것을 보고 마음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셨습니다(33, 38절).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으로 인한 그들의 슬픔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끼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예수님은 죽음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로 인해서 마음이 흔들리셨고 함께 우셨습니다 (35절).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앞에서, 그리고 죽음을 향해 가는 인생들을 생각시면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우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나사로의 무덤 앞으로 다가가서, 나사로의 무덤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11장 39-40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 하시니 그 죽은 자의 누이 마르다가 이르되 주여 죽은 지가 나흘이 되었으매 벌써 냄새가 나나이다 40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 (11:39-40).

예수님은 ‘무덤입구를 막아 놓은 돌을 옮겨 놓으라’고 말씀하신 후에, ‘내 말을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돌을 움직여서 무덤 입구를 열었습니다. 우리 나라는 땅을 깊이 파서 시체를 땅속에 묻지만, 이스라엘은 산악지대이기에 굴이나 돌을 파서 무덤을 만드는 경우들이 흔합니다. 큰 돌로 막아놓은 무덤 입구가 열리자, 나사로의 시체 썩은 냄새가 진동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늘을 향해 기도합니다.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42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 (11:41-42).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사람들이 믿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나서,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큰 소리로 말씀하셨습니다 (43절). 그러자 나사로가 수의를 두른 채 무덤으로부터 나옵니다 (44절 상), 예수님은 다시 한번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44하).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권위와 능력을 결정적으로 입증한 사건이었습니다. 또한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자기 선언을 확증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이 표적을 행하신 근본적인 이유는 본문 42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내신 메시야이고 죄인들의 구세주임을 저희로 믿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5, 42절). 더 나아가서,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부활하신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기적은 예수님을 믿으면 죽어도 산다는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우리 인생도 언젠가는 죽음으로 끝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들도 나사로처럼 다시 살아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또 이미 예수님을 믿은 우리는 이 세상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아 누리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고, 살아서도 성령안에서 이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죽어도 다시 살아날 것이고,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그런 차원에서 성경은 신자의 죽음을 잠든 것으로 표현합니다. 잠시 죽음의 잠을 들었다가, 주님이 다시 오실 날에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20절을 보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고전 15:20).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10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살전5:10). 예수님도 나사로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고 하신 말씀이 무엇이었습니까?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요 11:11).

그렇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 (12절). “나사로가 병들었다고 하는데 주님은 잠들었다고 하시니 참 이상합니다. 나사로가 병들지 않고 잠들었다면 차라리 더 낫겠습니다” 그런 말입니다. 그래서 11장 13-14절을 보면,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 14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 (13-14절). 그리스도인의 죽음은 잠시 잠자는 것일뿐, 영원한 죽음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때에 죽음의 잠에서 다시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4장14절을 보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살전4:14). 이 문장의 번역은 NIV영어 성경을 보시면 더 이해하기 쉽습니다. 제가 풀어서 소개해 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님 안에서 잠든 사람들을 예수님과 함께 데리고 오실 것을 믿습니다 (We believe that Jesus died and rose again and so we believe that God will bring with Jesus those who have fallen asleep in him.

나사로를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기적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다시 부활하실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신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죽음의 잠에서 다시 깨어날 것을 보여주는 하나의 표적입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다시 살아난 이 사건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1장 45절을 보면, 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믿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을 본 사람들은 하나님꼐서 보내신 자가 아니면 이러한 표적을 행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바리새인에게 가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알렸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적대적인 종교 지도자들의 입장을 잘 알고 있는 일부 유대인들이 그런 종교 지도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행동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능력에 놀랐지만, 예수님을 하나님이 보내신 구세주임을 받아들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계기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산헤드린 공회에 모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인 이스라엘 고대 사회의 국회의원 모임입니다. 지금의 아프카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에 넘어가서 모슬렘 종교법으로 아프카니스탄 국민들을 다스리는 처럼, 예수님 당시의 이스라엘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인 산헤드린 공회원이 이스라엘 사회를 다스렸습니다.

물론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국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종 결정권은 로마 황제의 권한을 대행하는 로마 총독에게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형에 해당하는 중대한 결정이나 사회적으로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이스라엘 사회안에 있는 전반적인 문제들을 산헤드린 공회에서 결정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모인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들 때문에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사실에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더 많은 군중들이 따르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외치면서 어떤 소요사태가 발생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면 결국 로마 군대가 무력으로 진압하고 나라가 더 큰 어려움에 처할수도 있고 자신들의 지위나 입장도 어려워 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세력이 커지면, 결국자신들의 권위와 기득권마저 빼앗길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적으로 간주하고 있던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정하였습니다 (50, 53절). 그것은 유대 사회의 기득권을 쥐고 있는 자신들이 이익을 위한 굉장히 계산이고 정치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대단히 정치적인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지켜내기 위해서 로마 정부의 눈치를 봐야했고, 또 국민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그 세력이 커지는 예수님을 어떻게 정치적으로 제거해야 할지를 고민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미리 적으로 간주하고 어떻게든 예수님을 제거하는데 그들의 관심과 목적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로 부활 사건으로 인해 온 무리가 예수를 추종하게 될 것을 두려워한 산헤드린(Sanhedrin) 공의회의 위기감은 극에 달하고, 드디어 공회가 소집되어 예수 살해를 공식적으로 모의하고 예수에 대한 수배령을 내리게 됩니다(11:45-57). 그 중 대제사장 가야바는 예수님을 박해하는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11장 50절을 보면, 대제상 가야바가 이렇게 결정을 합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50절). 사실 가장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백성들에게 그 길로 인도해야 할 대제사장 가야바가 자신의 정치적인 입장을 따라서, 죄없으신 예수님을 죽이자고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산헤드린은 나사로 부활 사건 때문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아지자 부활 사건의 장본인인 나사로 까지도 살해하려고 하는 악랄한 음모를 꾸미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은12장 10-11절이 나옵니다: “대제사장들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니 11나사로 때문에 많은 유대인이 가서 예수를 믿음이러라” (12:10-11). 나사로가 사형에 해당될 만한 죄를 지었습니까? 나사로가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이것이 성경이 보여주고 오늘날 한국의 정치가 보여주는 어두운 한 단면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표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첫번쨰로, 요한복음에 나오는 7가지 표적들 중 가장 절정을 이루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두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함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세번째로. 나사로와 같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건과 같이 마지막 날에 우리 신자들의 부활이 있을 것을 보여주는 표적입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장차 영원한 생명의 삶을 보장받은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임재하심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한 은혜에 감사하면서 몸된 교회를 섬기고 이웃을 섬기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럴때,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자는 삶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부언 (P.S): 매주 설교 녹음 파일은 교회 카톡에 올리고 있습니다. 파일의 용량 초과로 인하여 이곳에 파일 업로드가 안되고 있는 점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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